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의 ‘쌍굴’은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군용 터널로,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스며든 역사적 공간입니다. 납량특집에 종종 등장하지만, 단순한 공포 장소가 아닌, 잊혀진 아픔을 기억해야 할 장소로 조명되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 묻힌 진실, 우리는 ‘쌍굴’을 통해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이 조용한 지역에는 오랜 세월 숨겨진 장소 하나가 있다. 바로 ‘쌍굴’이다. 이름 그대로 두 개의 터널로 이루어진 쌍굴은 지금은 폐쇄되어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곳은 한때 조선의 땅 위에 깊은 상처를 남긴 장소였다.

쌍굴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일본 군부의 명령으로 강제로 만들어졌다. 목적은 분명했다. 수색조차장과 군수물자 창고(현 월드컵공원 일대)를 연결하는 보급용 터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터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이는 강제노역의 결과물이자, 침략 전쟁의 그림자다.

굴착에는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대부분 강제로 징용된 이들이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견뎌야 했다. 장비도 부족했고, 안전장비도 없이 손과 곡괭이로 터널을 뚫었다. 산소가 부족하고, 습기가 가득한 굴 안에서 사고는 끊이지 않았으며, 목숨을 잃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쌍굴은 상굴과 하굴로 나뉘며, 각각 100여 미터와 200여 미터 정도의 길이를 가진다. 특히 하굴은 곡선형 구조로 인해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내부는 항상 어둡고 습하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종종 ‘유령굴’로 불리며, 괴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괴담보다 더 소름끼치는 것은, 그 안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들이다.

이곳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군사적 이용 가치도 사라지고, 개발 압력에서도 벗어나며 존재만 유지됐다. 그러다 2017년, 덕은지구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쌍굴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고양시는 역사적 가치 보존과 기록사업을 위해 이 굴에 대한 정밀 조사와 기록화 작업을 실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것은 단순한 토목 구조물이 아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응축된 유적이었다.

쌍굴은 단순한 폐터널이 아니다. 이는 침략과 수탈, 그리고 저항의 상징이다. 이곳은 조선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잊혀진 이름들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공포의 장소가 아닌, 기억의 장소로 남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이곳은 납량특집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며 오싹한 장소로 소개되지만, 우리는 단지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바라보아선 안 된다. 진정한 공포는 괴담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짓밟힌 역사 그 자체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쌍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덧없는 세월이 흘러도, 그 어둡고 축축한 터널 속엔 아직도 숨죽이며 기다리는 기억들이 있다. 우리는 그 기억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쌍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하고 있다.

고양시 덕은동 ‘쌍굴’,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 현장 

출처 : 고양시 덕은동 ‘쌍굴’,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 현장  < 지방자치 < 지방시대 < 기사본문 – 고양일보

경의선 연결 쌍굴터널, 일제 침략야욕 보여주는 유적  
화전동 공동묘지 내 일본 전범기업이 세운 묘비석
1940년 수색 조차장 건설 당시 무연고 묘지 모아놓아 
강제징용 희생자 묻혔을 가능성 제기…추가조사 필요

왼쪽 상부에 있는 터널은 100m 길이로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반면 오른쪽 하부에 있는 터널은 곡선으로 상부 터널보다 훨씬 길다. 하부 터널 바닥에는 철로가 깔려져 있다. 이 일제강점기때 건설된 이 ‘쌍굴’은 수색 철도 조차장과 일본 육군 창고를 연결하는 중간 보급로였다.

고양시 덕은동 201번지에는 돌산에 구멍을 내 만든 ‘쌍굴’이라 불리는 터널이 있다. 상부터널과 비스듬한 각도로 아래에 있는 하부터널은 현재 판이하게 다른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지도상으로 ‘무명터널’이라고 명기된 약 100m 길이의 상부터널은 1차선 도로가 깔려있어 간혹 자동차가 지나갔다. 하지만 국유지에 있는 하부터널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하부터널의 바닥은 쓰레기가 둥둥 떠 있는 물이 고여 있었고 물속에는 녹슨 철로가 깔려져 있었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하부터널은 직선의 상부터널보다 길이가 길었는데, 상부터널 밑에서 곡선으로 가로질러 뻗어 있는 모양새였다.

‘쌍굴’ 중 상부에 있는 터널은 약 100m 길이로 자동차가 왕래한다.

이 쌍굴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고양시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터널 공사과정에서 강제 징용자의 희생이 배어든 아픈 역사 유적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쌍굴을 사이에 두고 수색 철도 조차장(현재 수색 철도 기지창)과 육군창고(현재 망월산 북쪽 육군 30사단 사령부 내)가 있었다. 따라서 쌍굴은 수색 철도 조차장과 일본 육군 창고를 연결하는 중간 보급로였던 것이다. 

수색 철도 조차장에 대한 기록은 1940년 1월 26일자 ‘동아일보’에서 ‘3대 조차장 건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사는 경성 수색·부산·평양 근교에 대규모 조차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일제가 3대 조차장를 건설한 것은 1937년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 때문이다. 일제는 육군 창고에서 탄약, 식량 등을 포함한 각종 보급품을 조달했는데, 이러한 보급품을 수색 조차장에서 평양~신의주~만주로 달리는 경의선 철도를 통해 실어 날랐다. 즉 쌍굴은 경의선과 연결시키기 위해 수색 철도 조차장이 건설될 때 함께 건설됐다.  

‘쌍굴’ 중 하부에 있는 터널의 한 쪽 입구는 막아놓았다.
하부에 있는 터널의 다른 한쪽은 개방되어 있지만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물이 고인 바닥을 들여다버면 일제강점기 때 깔아놓은 철로가 보인다.

덕은동 쌍굴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끄는 점은 이곳에서 1.2km 떨어진 화전동 공동묘지와의 연관성이다. 쌍굴 혹은 수색 철도 조차장에 강제징용된 이들이 공사과정에서 숨진 후 공동묘지로 옮겨졌을 개연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덕은동 국방대학교에 러시아·중국에서 끌려온 포로를 모아놓은 수용소가 있었다는 증언이 맞다면, 이곳에서 조선인 외에 러시아·중국 포로들도 강제징용의 희생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 전문위원은 “당시 토목공사를 진행했던 일본 기업 하자마구미의 관련 생존자를 만나볼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징용자가 죽어 화전공동묘지에 묻혔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인이 시신을 차로 실어와 공동묘지에 묻었다는 증언이 있다. 이 증언을 미뤄볼 때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공사지역(제3공구) 내에 원래 있던 무연고 무덤들을 공동묘지로 이장 했을 수도 있고 공사 도중 숨진 징용자를 공동묘지에 묻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 묻힌 사람이 조선인인지 중국인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화전동 공동묘지에는 일본의 전범기업 리스트에 올라있는 하자마구미가 세운 묘비석이 있다. 묘비석 앞면에는 경성조차장제3공구내무연합장지묘(京城操車場弟三工區內無緣合葬之墓)’라는 16자가 적혀있다. 뒷면에는 경기도 고양군 수색리(현재의 은평구 수색동)와 고양군 신도면 덕은리에서 이장했음을 표기하고 있다. 경성조차장, 즉 수색 철도 조차장에서 있던 묘를 이장했거나, 혹은 조차장 공사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을 화전동 공동묘지에 묻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석을 세운 연도는 소화 15년(1940년) 3월로 일본이 침략의 야욕으로 국내 3대 조차장 건설을 시작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화전동 공동묘지에 있는 일본전범기업이 세운 묘비석. 앞면에는 경성조차장제3공구내무연합장지묘(京城操車場弟三工區內無緣合葬之墓)’라는 16자가 적혀있다.
묘비석의 뒷면. 이 면에는 경기도 고양군 수색리(현재의 은평구 수색동)와 고양군 신도면 덕은리에서 이장했음을 표기하고 있다.

이렇게 덕은동 쌍굴과 화전동 공동묘지 내 묘비석은 일제강점기 때의 아픈 역사를 반영한 유적임에 분명하다. 이에 따라 고양시는 쌍굴과 묘비석에 대해 역사교육의 생생한 현장으로 활용하면서, 특히 묘비석과 강제징용 희생자와의 연관성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추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수용 고양시 문화유산관관광과장은 “덕은동 쌍굴의 땅 소유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이다. 시가  방치된 쌍굴을 역사유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비를 해야 하는데,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공단측과 접촉해 교감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다”이라면서 “협의가 이뤄지면 이곳이 일제 강점기의 시설물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철로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정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고양일보(http://www.goyang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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